뭉쳐서 뜬다 I :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같은 중학교를 나온 수백명의 동기들 중에서 사는 곳도 제각각이었던 6명이 어쩌다 친해져 우여곡절 세월 낚다가, 다 늙어서 처음 해외로 나들이를 갔다. 일본 지겹다, 중국 싫다, 근데 비행기로 3시간 이상은 가기 싫다면 갈 곳은 뻔하지 않은가..
2017년 7월 31일 월요일 제주-서울-인천
4주 간의 고단한 실습을 마치고 난 거지고모에게 남은 마지막 방학 한 달은 여행 일정으로 빼곡히 들어차 있었으니, 제주-서울-블라디보스토크-서울-싱가포르-스리랑카-방콕-서울-제주의 여정. 대체 비행기를 몇 번이나 타야하는 건가. 이제는 체력이 그렇게 안 될 텐데, 헉헉헉.... 유난히 무더웠던 탓에 체력은 이미 방전인데, 그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라며.
거지고모가 탈 건 아니지만 이젠 익숙해져서 몸에 밴 습관처럼 찍긴 했지만, 실은 저어기 꼬리가 보이는 비행기가 서울로 실어 날아가주실 그것. 인천으로 가는 내항기로는 시간이 안 맞아 못 타고, 대신 최종 목적지로 짐을 다 부치기 위해서는 전날 6시 전에 비행기를 타면 된다고 해서 짐 다 부치고 편안하게 출발했다.
서울에서 친구나 만날까 하다가 날씨가 너무 덥고 가기 전부터 지치지 말자 싶어서 걍 인천공항으로 가서 영화나 한편 보기로 했다. 가끔씩 개봉하는 정우성 영화 말고는 극장을 간 적이 거의 없던 터라 낯설기도 하고. 쨌든 <군함도>를 봤는데..... 영화적인 완성도를 떠나서 저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참 천년의 행운을 다 끌어안은 게 아닌가 싶고, 죄송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새벽 3시쯤의 이른 시간인데도 생각보다 차들이며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새벽부터 가는 비행기가 많구나. 그럼 대체 몇 시에 일어나서 여기까지 와야 하는 건가.. 하긴 부산에서 출발하는 친구들도 벌써 일어나 준비하고 있겠구나.
하릴없이 카페에 죽치고 앉아 일정을 다시 한번 체크하다가, 싱가포르에선 어쩌지? 스리랑카는? 방콕은?
평소엔 꽤나 꼼꼼하게 일정을 짜고 다니는 편인데, 무더위에 지친 건지 늙은 건지 가기 싫다는 맘이 너무 지배적이라 그런 건지 쉬고 싶은 생각 뿐이라 그런 건지 블라디보스토크 이후론 백지 상태라 우선은 블로그 탐방부터.
2017년 8월 1일 화요일 인천-Владивосток
5명의 친구들과 무사히 만난 뒤 아침부터 먹느라고 정신없이 헤매고 다니면서 꺄르륵 거리다가 어느새 출발할 시간이 됐더라고. 아니, 곧 이륙하자마자 기내식이 나올텐데 왜들 먹겠다고 난리인지 5명 제각각 혼파망 ㅋㅋ 벌써부터 혼이 쏙 빠지는 느낌? ㅋㅋㅋㅋ 해외를 이렇게 우르르 몰려 나가는 게 첨이라 적응이 안 돼. 제발 무사히 돌아오자....
진짜 어지간하면 안 타고 싶었는데 빠듯한 휴가기간과 직항이라는 조건을 충족하는 게 얘네 뿐이라서. 대체제가 없으면 원치 않아도 이들 일가의 불법행위를 눈감아줄 수 밖에 없는 거라니 이게 무슨 자본주의냐!
맛없던 기내식, 구로나 배가 고파서 맥주 안주 삼아.
러시아나 중국쪽 항공사는 북한 영공을 통과한다는데, 우리는 빙 둘러간다. 두 시간도 안 걸릴 것 같은데....
드디어 처음 보는 러시아 땅. 독일 갈 때 느낌이랑 비슷하네.
사람 다 차버린 공항셔틀에 어찌어찌 낑겨 타서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로 향했다. 한 30분 정도면 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꽤 멀더라. 그래도 친구들이랑 재잘대며 가니 금새 흘러가는 시간.
시내로 본격 진입하는 것 같은데 우리를 반겨주는 엘지의 광고판. 광고가 아니라 공해로 느껴짐.
이 드넓은 땅덩어리에서도 언덕 위에 아파트라니.
거지고모를 매료시켰던 러시아 구성주의 자료들이 아른아른.
기차역에 내려 캐리어 지고 호텔에 도착, 카드결제기가 고장나서 현금으로 줘야한다는 눈에 빤한 거짓말. 그렇다고 체크인을 안 하고 계속 버틸 순 없으니 근처 은행 가서 가지고 있던 달러를 루블로 바꿔주고 방을 정하는데, 우리도 뭉뜬처럼 해보자며. 근데 은근히 재밌었다.
적당히 짐 풀고 호텔 바로 앞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준비했던(?) 식당리스트에 있던 곳이긴 하지만 ㅋㅋ 별 기대없이 주문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아서 다들 만족해했다. 서버도 적극적으로 해줘서 팁도 두둑하게 주고 각자 술도 한잔씩 하며 러시아 적응 스타트!
크리미한 음식들을 잘 못 먹는 거지고모를 위해.....
가 아니라 맥주 안주로 시킴 ㅋㅋ
음..
호텔 근처에 24시간 슈퍼가 있어서 털러 갔는데 생맥을 팔더라고. 근데 맥주를 마시면 마실수록 독일이 그립다. 거지고모가 만약 해외에서 살아야 한다면 그건 독일이야. 맥주와 하리보의 나라!
일단 캔맥을 종류별로 하나씩 사서 마셨는데. 근데 맥주를 마시면 마실수록 독일이 그립다. 거지고모가 만약 해외에서 살아야 한다면 그건 독일이야. 맥주와 하리보의 나라! (2)
애들 짐 푸는 걸 지켜 봤는데 뭘 이리 바리바리 싸온 거야! ㄷㄷㄷ
애들 짐 푸는 걸 지켜 봤는데 뭘 이리 바리바리 싸온 거야! ㄷㄷㄷ
그렇게 첫 날 밤을 새카맣게 불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