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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서 빈둥빈둥

시내버스로 부산에서 광주가기 : 부산~진주

by 거지이모 2010. 2. 9.

나도 모르게 내지른 휘트니 휴스턴의 내한공연. 근데 오마니께 차마 18만원이나 주고 공연보러 서울간단 소리가 안 나온다, 아프셔서 퇴원하신 지 얼마 안 됐는디.. 아픈 애미 두고 노래 들으러 가는 나는야 불효녀....-_-; 이리저리 눈치보고 있는 와중에 많이 회복하셨고, 마침 방학 때 못 내려온 조카들을 설과 봄방학에 맞춰 데려오란 특명(?)이 떨어졌다, 옳다쿠나!
예전부터 계획했던 부산~광주, 광주~서울 시내버스로 가선 휘트니 휴스턴 공연 보고 조카들을 데리고 돌아오는 머나먼 여정이 이제 시작된다. 설 일주일 전에 와준 휘트니, ㄳㄳㄳㄳㄳ



2010년 2월 3일 수요일


원래라면 아직 꿈나라에서 우성님 품에 안겨 있었을 시간.




부산광역시 장전동 → 김해시 어방동 인제대학교 : 8번 940원(카드) 5:54-6:48(54분)

하필이면 오늘부터 추워져 덜덜 떨면서 타니까 아저씨가 히터를 빵빵허니 뜨뜻하게 틀어주셨다.
친구 만난다고 여러 번 탔던 지라 언제쯤 깨야될 지도 알겄다, 뜨시겄다, 새벽이겄다 버스가 내 방 마냥 푹 잤다.




김해시 어방동 인제대학교 → 창원시 사림동 경남도청 : 97번 0원(환승) 6:54-8:17(83분)

창원은 시외버스로 두어 번 가보았을 뿐, 노선버스로는 처음이라 운전석 뒤에 앉았다.
라디오에서 출근길 정체 소식이 흘러 나온다, 그래봤자 바로 옆동넨데 뭐 그리 걸리겄어?
허나 그것은 나의 크나큰 착각이란 것을, 곧 깨닫게 되었다.




장유에서 창원 방면으로 올라서자말자 장유-창원터널 간 기나긴 정체 대열에 들어섰다.
질주본능가득충전 기사아저씨, 요리조리 노선을 바꿔보지만 어림도 없다....OTL
여기서 이렇게 지체하면 하루 한번만 다니는 함안 군북서 원북가는 버스를 놓칠 지도 모르는디..
그렇게 되면 진주 부계에서 반성터미널 가는 버스도 두 시간이나 미뤄지는디..
저녁에 광주 도착해서 떡갈비 무꼬 담날 점심께는 군산에서 짬뽕무꼬 서울간다는 계획은?
금욜 밤에 도착해 토욜 새벽 왕십리에서 아바타 보려고 어렵사리 예매해뒀건만 이 모든 게 개거품?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내 간을 바삭바삭하게 튀기고 있다....엉엉..




창원시 사림동 경남도청 → 마산시 회성동 교도소입구 : 111번 940원(카드) 8:22-9:10(48분)
출퇴근 시간인데다 정거장이 35개나 돼서 1시간이 뭐야 훨씬 오래 걸릴 줄 알았드만 빨리 왔다.
이래되면 원북행 버스에 깨알같은 희망이 솟아....?




마산시 회성동 교도소입구 → 함안군 가야읍 함안터미널 : 252-2번 1,000원(현금) 9:12-9:38(26분)
내리자마자 타게 돼서 혹시나 하며 살짜쿵 기대를 걸었지만 38분에 내린 내가 타야할 버스는 36분 출발.
창원터널 정체만 아녔어도....흙흙..




함안군 가야읍 함안터미널 → 함안군 군북면 군북터미널 : 군내버스 1,100원(현금) 10:10-10:23(13분)
결국 열 시를 넘기고 버스를 탄 나는 군북역에서 기차를 탈까 잠시 고민을 했다.
아니면 진주가는 길이 험난해질텐데.. 나의 이 느린 걸음으로 한 시간 만에 9km를 걸을 수 있을까?
하는 사이에 군북터미널에 도착.




내가 가야할 곳, 진주시 사봉면 부계리.
좌회전하면 편히 갈 것이고, 직진하면 버스시간을 맞출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안고 걸어야 한다.
하지만 편하게 시간 맞춰 갈 거였으면 애초에 기차나 고속버스를 탔어야 하는 거겠지. 일단 고!




하.. 16km. 부계까지만 가면 되니까 9km 남짓 걷겠지만 그래도 저 숫자에 다리가 풀려..
근데 이 때 알았어야 했다, 저 16km는 방어산 오르는 길이라는 것을.. 왜 여사로 봤을까? ㅠㅠ




철길따라 가는 길. 기차는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신기하다.
이 철길이 내 눈에서 사라지면서 길도, 길도 점점 오르막이..




시간이 지날수록 지구 저 밑에서 나를 마구 잡아당기기 시작한다.
내가 언제부터 공부했다고, 흔들리는 버스간에서 어떻게 볼 거라고 영어책은 가져와선 무겁게 지고 갈까?
이런 시골에 무슨 쓸모가 있을 거라고 놋북은 가져와선 무겁게 지고 갈까? -_-;
길 가에서 나뭇가지를 주워 잔가지는 잘라버리고 지팡이로 만들어 짚고 다녔다, 한결 수월타.
하지만.... 도라에몽, 진구 도와주고 남는 시간에 내게도 좀 와줘~~~~




산 타는 거 진짜 싫어하는데.. 수학여행으로 설악산을 갔어도 배아프다카고 밑에서 놀았는디..
수련회로 억지로 지리산 갔다가 길 잃어 24시간 헤맨 이후론 산이라면 겁도 나는디..
지도 확인할 때 위성사진만 클릭했어도 이 길이 방어산을 넘는 거라는 것을 알았을텐데....엉엉
어디선가 까마귀가 푸드득 날아와서 비웃는다, 깍~~R, 깍~~~R




아, 드디어 진주다~~~~아~~ 일단 눈물부터 좀 닦고....ㅠㅠ




저~~ 산 아래 내가 가야할 곳, 진주시 사봉면 부계리 화광마을.
반성터미널로 가는 11시 20분 버스는 놓친 지 이미 오래, 땀이나 식히며 천천히 하산.




반가워요, 화광마을..




옛날엔, 물론 지금도, 학교 다니려고 매일같이 십리길을 걸어댕겼다는디
나는 고작 이십리를 한번 걸었을 뿐인데 삭신이 쑤신다, 망할 놋북과 영어책! 콱 내다 버릴까?
하는데 꼬꼬꼬꼬르륵륵~ 아, 맞다, 하루종일 먹은 거라곤 산 넘을 때 마신 물 밖에 없구나..




출발할 때 챙겨온 닥터유 영양바와 칼로리 바란스.
이런 걸로 태평양같은 내 뱃속을 채울 순 없지만 이따 저녁에 먹을 광주 떡갈비를 위해 부실하게 먹어줌! ㅋ
대충 먹고나니 버스시간까지 좀 남아서 걍 다시 걷기로 했다. 가다가 버스만나면 세워줄끼야 카믄서.




부동마을 버스정류소에서 발견한 남강 괴물, 에구 무시라, 꺅~ >.<
하며서 비웃어줬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오늘의 생고생은 COB보다 더하다는 남강 괴물의 저주....? ㅋ




저주도 뭣이고 간에, 고생했다, 내 발들아.
발등에 뼛조각이 있었어도 잘 걸어준 오른발아, 그런 오른발 때문에 1.5배 고생한 왼발아, 모두 사랑해~
앞으로 40년 정도 더 고생해다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