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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서 빈둥빈둥

오픈하우스 서울 : II

by 거지이모 2016. 11. 5.

2016년 10월 30일 일요일   서울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여니 남산이 땋!

침대 위에서 빈둥빈둥 거리며 꿀잼 월시를 보고 싶었지만 그러려고 온 게 아니므로 ㅠㅠ

 

 

 

 

종묘 뒤 율곡로에서 공사가 한창이던데 통행로를 이렇게 만들어 놨더라고.

 

 

 

 

창경궁의 돈화문이 보이는데, 현대사옥 없애고 싶은 충동이.. ㅎㅎ

 

 

 

 

시간이 좀 남기도 했고 쉬기도 할 겸 앉아 있는데, 가족들이 즐겁게 노는 게 보였다. 어찌 보면 정말 별 거 아닌데도 까르를 웃으며 노니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오픈 하우스 서울_보이드 커넥션 - 근현대 보이드의 형성과 소멸 2 : 이연경

국립 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출발한 프로그램, 마당에서 잠깐 소개를 해주셨다. 구한말-일제강점기-70년대로 이어지는 변화상에 대해 개괄적으로 설명해 주시고, 특히 의료와 교육에 포커스를 맞춰서 어떤 사람들이 어떤 시설을 갖추며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옛 기무사와 국군통합병원을 리모델링한 국립 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계단실 풍경.

 

 

 

 

이런 난간의 형태 하나하나도 그 목적에 맞게 만들어 진 거 였다.

 

 

 

 

오픈하우스 서울 트윗에서 받아온 사진.

교수님께서 이상의 <날개>를  시작으로 근대 혹은 근대인에게 새롭게 다가온 옥상이란 공간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녹음을 할 수도 없고 손으로 받아적기는 더더욱 불가능하여 블베로 타이핑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보니 딴 짓 하는 거 같자나! ㅋ

 

 

 

 

원래는 이곳이 제중원 내 의학교였다가 경성전문의학교, 경성제국의전으로 바뀌었단다.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는 저 풍경이 조선총독부로 뚝 잘려 있었겠지. 그 시절에 의학공부를 할 정도면 어느 정도 상류층의 엘리트였을텐데 근대인이라는 자부심이 앞섰을까, 아님 식민지인의 서러움이 컸을까?

 

 

 

 

오픈하우스 서울 트윗에서 받아온 사진.

정독도서관은 1977년에 이전엔 경기고등학교였지만 그 이전에 우리나라 최초의 중학교인 경기공립중학교였고 그 전에는 김옥균의 집터였다고 해. 참, 서재필과 박제순의 집터였기도 함. 갑신정변 이후 쇠락한 개화파들의 집터는 대부분 몰수당해 근대시설이 들어서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백병원의 설립자인 백인제 가옥으로 불리지만 실은 친일파 이완용의 조카 한상용의 집이었단다. 1913년에 지어진 이 한옥은, 한옥이지만 한옥 같지 않은 요소들이 입구부터 땋! 보이고 그리고 군데군데 남아있다. 바닥의 결이나 장막, 복도식 구조, 유리의 사용 등등 근대화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있다. 당시 일식은 근대화를 받아들인 척도로 여겨졌고 그게 곧 자랑거리로 여겨지던 시절.. 그래서 여기엔 조선총독 중에 오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록펠러도 왔을 정도로 엄청나게 "ㅏ^허*(왜먀ㅕ@ㄷ비!ㅏㅓ외먼ㅇ히멍" 욕해주고 싶은 친일파였....

 

 

 

 

재동초등학교는 1895년 계동소학교로 설립되었다. 우리나라의 초기 근대교육시설은 대부분 북촌에 위치해 있는데, 그건 관료나 친일파들이 북촌에 거주했기 때문이다. 기숙사를 통해 근대인으로서 생활을 가르치고 야구부라는 근대 스포츠를 통해 근대인의 규율을 체득시키려고 했다. 그래서 운동장은 언제나 학교의 중심이었단다.

 

 

 

 

재동초에서 조금 내려오면 보이는 최소아과의원. 도로를 넓혀야 하는데 학교를 자를 순 없으니 건너편 건축물들을 싹둑 잘랐고 그 증거가 되는 곳. 스업 돌릴 때나 하던 걸....ㄷㄷㄷ

 

 

 

 

현대 사옥 옆 원서공원은 관상감 터였다가 친!일!파! 민영휘가 1906년 휘문고를 설립했던 곳이다. 그 시절은 정확한 주소가 있을 리 없는데, 저기 보이는 큰 나무와 같은 지형지물이 원래 건물의 용도나 성격, 주인 등을 가늠해 줄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한다.

 

 

 

 

구 공간 사옥. 아이러니 하게도 공간이 망하고서야 ㅠㅠ 그 내부를 자세히 볼 수 있다는 것.

 

 

 

 

헌법재판소와 윤보선 가옥.

이곳은 원래 홍영식의 집터였다가 제중원이 들어섰고 광제원으로 사용되다가 대한의원으로 합병되고 경기여고가 설립되면서 기숙사로 사용됐던 곳이다. 1991년 헌법재판소가 들어서면서 남아있던 제중원의 건물이 철거된 거란다. 그 얘길 듣는 사람들이 대부분 탄식을 터뜨렸다.... 헌법재판소 자리는 한성위생회의 마굿간 터였다고 하니, 수도서울이 관습법이라는 이딴 되도 않는 거 하지 말고 견마지로나 다 하시길... ㅎㅎ

한편 윤보선 가옥은 내부는 보지 못하고 주변만 한바퀴 돌았는데, 박영효에게 하사했던 집이었단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코스였던 풍문여자고등학교는 안동별궁 터였는데, 당시 순종의 가례가 이루어진 곳이었다. 친!일!파! 민영휘의 부인 안유풍이 설립한 학교로, 우리나라 초기현대건축의 3인방 김수근, 김중업, 김정수를 꼽는데 그 중 김정수가 설계했다. 실용성을 추구했던 그는 얼마나 싸게 대량 공급할 수 있는가에 주목했고, 1965년 그 당시 혁신적이라고 할만한 PC 공법을 도입한 것.

현재 북촌을 말할 때 대부분 한옥을 떠올리지만 실은 그 한옥이라는 게 당시 집장사들이 빠르게 지어 댔던, 오늘날의 아파트의 위치인 거고, 실은 교육시설과 의료시설을 기치로 한 근대의 출발지라는 것에 주목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며 끝을 맺었다. 2시간 넘게 북촌 일대를 걸으며 설명해주신 이연경 교수님이 너무 감사했고, 실은 남촌이 전공이라는 말씀을.... ㅋㅋ

 

 

 

 

잠시 쉬었다가 다시 옥상으로 올라왔다.

 

 

 

 

오픈 하우스 서울_옥상 달빛 페스티발 - 옥상 낭독회 : 승효상

임진영 기자와 승효상 건축가의 대담 형식으로 이루어진 옥상 낭독회.

그러고 보니 승효상 건축가의 전시로 시작해 승효상 건축가의 대담으로 끝나는 일정이었군. ㅎㅎ

 

 

 

 

내년에도 또 참가하리라 다짐해본다.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2틀 앞으로 다가온 중간마감 어쩌지? ㄷ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