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밖에서 빈둥빈둥

탐라국과 류큐국 I : 일본 오키나와

by 거지이모 2017. 10. 23.

마지막 학기의 중간고사 기간이라는 것은 그냥 쉬라고 있는 거지, 아무리 설계가 2개라고 해도 그런 거지......만, 알바와 워크샵, 졸전 준비로 거지이모 머릿속은 혼파망.. 졸전은 대충 날리기로 했고, 알바는 방법이 없고, 워크샵 준비는 발등의 불이고.. 어째 그냥 쉬 넘어가는 게 없을꼬. 그래도 몇년 째 이어지고 있는 류큐대학과의 교류는 소홀히 넘어갈 수도 없는 것이고, 이번엔 우리가 가기로 한 해라서 5학년 3명만 오키나와로 가게 됐다.

 

2017년 10월 19일 목요일   인천-沖縄

평소에도 안 한 설계를 시험기간에 할 리가 없지. ㅋㅋ 핑곗김에 본가에 들러 쉬다가 인천공항에 먼저 가서 교수님과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리 주문해놓고도 게을러 터져서 못 읽은 윤일이 건축가가 쓴 <동중국해 문화권의 민가>와 관련 논문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아봄.

 

교수님은 잠시 일보러 가시고 우리끼키 커피랑 간단하게 샌드위치 먹으며 설레는 맘을 증폭시켰다. ㅋㅋ 놀러가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같이 해외가는 건 첨이라 덩덕덕쿵덕쿵 마음 속으로 휘모리 장단을 휘몰아쳤지.

 

버스보다 간신히(?) 큰 보잉 737-800. 오키나와까지 잘 부탁!

 

어깨 너머로 보이는 오키나와. 南國의 熱氣가 착륙 전부터 느껴지더니 역시나 내리자마자 습한 기운이 훅 들어와서 주차장까지 걸어가는 데도 땀이 또르르륵 떨어지더라.

 

우리가 3박4일 워크샵 동안 머물 곳은 오키나와현 시마지리군 하에바루쵸(沖縄県 島尻郡 南風原町)의 캰(喜屋武)이란 작은 마을에 있는 가정집이다. 2년 전 워크샵 때 숙소도 여기였다는데, 그 땐 주제가 달랐는데 이번 주제는 이 마을 재생에 관련된 내용.

 

짐을 가져다 놓고 하에바루 공민관으로 가서 간단한 소개와 함께 마을박물관 투어를 했다. 근데 주제가 말이지, 2차 세계대전부터 현재까지의 마을 역사. 아무리 이곳도 류큐라는 자신들만의 왕국이 있었고 강제로 편입됐다곤 하나, 전범국이자나. 굳이 우리를 초대해놓고 전쟁의 참혹함을 재현해 놓은 박물관 투어라니, 이만한 무례가 또 어딨나.. 열심히 적는 척 하긴 했지만 내내 진짜 속이 부글부글 끓고 울화가 치밀었다.

 

캰 마을의 전통축제인 줄다리기에 대한 비디오를 봤다. 워크샵 주제와 관련된 거라 오노 교수님께서 지난 여름에 보내주셨던 DVD랑 같은 내용이더라고. 그래서 거지이모는 열심히 딴 짓을....ㅋㅋㅋ

 

근처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미리 준비해온 떡볶이를 끓여서 마련한 저녁. 마을 주민 몇 분과 오노, 시미즈 교수님과 각 연구실 학생들과 함께 인사도 하고 얘기하면서 첫 날을 마무리했다. 지난 봄에 제주로 와서 낯익은 학생들도 있고 아닌 이들도 있었지만, 그리고 교수님 말고는 통역은 없었지만 각자 초금 영어로 즐겁게 대화를....ㅋㅋㅋ

 

다들 돌아가고 나서 우리는 새벽까지 다음 날 있을 PT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제주 원도심과 우리가 작년에 했던 위셋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를 하는 건데 미리 다 준비했음에도 막상 하려니 셋이서 쫄아가지고 연습에 연습을 반복.

 

2017년 10월 20일 금요일   琉球大学

초록초록한 류큐대학교.

 

어디에나 있는 건가 싶은 공대4호관. ㅋㅋㅋ  근대 교육을 일식에서 따와서 그런 거겠지.

 

우리 학교도 참 넓다고 생각했는데 류큐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고, 가을에 여름을 걸으려니 땀나 죽겠고.

 

학교 안에 강이 흐르는 스케일....

 

공연하다가 삘 받으면 강물로 뛰어들지도..... 실은 거지이모가 뛰어들고 싶었다고......

 

여기는 맨홀 뚜껑도 류큐대학 꺼.

 

원치 않게 쌓여있던 원도심 자료 더듬더듬 영어로 대방출.

 

오키나와에 대한 소개. 특히 돼지귀무침 취저! 차갑게 해서 술안주로 걸치면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

 

슈리킨조초 이시다타미(首里金城町石畳道). 오키나와 건축물들을 고대부터 현대까지 소개해줬는데, 꼭 가보고 싶은 돌길. 일정에 슈리성 답사가 있어서 갈 줄 알았는데, 시간여건 상 못 갔다. 담에 가게 되면 꼭 가고 싶다고....ㅠㅠ

 

발표와 토론을 마치고 다같이 강의실에서 점심을 먹는데, 거지고모 취저한 산핀차(さんぴん茶). 재스민 차인데 류큐어에서 유래된 거라는데 계속 이것만 사마시니까 나중에 류큐대 학생들이 티백을 선물로 줘서 갔다와서도 한동안 우려마셨다. 내년에 류큐대 학생들 다시 오면 삼다수만 주구장창 선물해야겠다. ㅋㅋㅋ

 

잠시 쉬다가 나카무라 가옥(中村家)으로 이동했다. 18세기 건축양식이 남아있는데, 제주로 치면 성읍민속마을 정도? 섬에는 올레가 있다면 오키나와에는 힌푼(ヒンプン)이라는 저 가림막이 있는 거다. 마찬가지로 기후의 영향으로 차폐와 차풍을 위한 거라고 보면 된다.

 

여기서도 당연히 볼 수 있는 시사(シーサー). 오키나와의 수호동물로 섬으로 치면 돌하르방 내지 동자석 같은 느낌. 입벌리고 있는 게 수컷, 입다물고 있는 게 암컷으로, 온갖 건축물에 다 자리잡아 지켜주고 있지.

 

안녕, 거지이모!

 

방 한 칸이 되기도 하고 세 칸이 되기도 한다. 너무 습하고 더운데 여기 들어오니 바람이 솔찮이 불어오는 게 시원.

 

부엌에서 음식물은 이렇게 매달아서 보관

 

한쪽 구석에 있는 측간. 여기서 문열고 볼 일을 본다면,

 

이런 풍경이 이어지는 거지.

 

별채와 이어지는 뒷마당. 일드에서 자주 보던, 모기향 피워놓고 드러누워 별구경 하면 딱일 듯..

 

그러다 고개를 들어보면 섬의 풍채와 같은 역할을 하는 발이 도르르 말려 있다. 여기도 워낙 태풍이 잦은 곳이라 없으면 큰일날 거야. 비가 오면 제아무리 크고 튼튼한 우산이라도 의미없는 곳이라서..

 

여기 드러누워서 과제하다가 수박 잘라먹고 뒹구르르 하면 좋겠다야.

 

풍경과 같은 거라고 하기엔 너무 크단 말이지.

 

가옥에서 나와 주변 별채들을 둘러보는데, 제주와 쌍둥이섬인가 싶을 정도의 돼지를 키우던 뒷간, 통시.

 

뒷산으로 이어지는 길에 오르면 이렇게 풍광이 한 눈에 보인다.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방법으로 제주는 지반을 파 가옥의 높이를 낯췄다면 그보다 조금 더 남방인 류큐는 가옥의 높이 자체를 높이는 방법. 이건 타이완도 마찬가지.

 

한바탕 더위를 피해 매표소 옆 기념품가게에서 차와 양갱 한 조각으로 타는 갈증을 달래보지만, 오키나와 산 사탕수수로 만든 설탕으로 간해 먹는다는데 너무 달아서 거지고모는 포기.

각자 조금 휴식을 취한 뒤 워크샵을 위한 답사를 위해 다시 캰 마을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