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안에서 빈둥빈둥

경상북도 영주 부석사

by 거지이모 2008. 12. 12.
2008년 11월 17일 월요일

거지이모님 탄신일 하루 전 기념여행으로 영주시를 선택했다. 소백산, 부석사, 사과, 소수서원, 선비촌, 풍기 인삼 등의 이유보다는 쫄면이 끌렸다, 거지이모에게는....크핫.. 그런데 약속이 어긋나 혼자 가야할 상황이 되었다. 가지말까 라고도 생각해봤으나 그러기엔 쫄면 맛이 너무 궁금했다. 매운 걸 잘 못 먹는 거지이몬데, 왜 이럴까? 피리가 항아리 속 코브라를 춤추게 한 것처럼, 쫄면이 집 안에 파묻혀있던 거지이모를 걸어나오게 했다.

노포동 터미널에서 안동 경유 영주행 버스를 탔다. 안동에 잠깐 정차하는데 장날인듯 했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것이.. 그러고보니 처음 계획은 거지이모님 뱃속에서 영주 쫄면과 안동 찜닭의 하모니였는데.. 찜닭은 아쉽지만 다음에 먹어줄께~ 하고 다짐하는 동안 영주시에 이르렀다. 샛노란 은행잎이 거지이모님을 반겨주고 있었다. 그래, 부석사의 은행도 그러할 것이야!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1분 거리인 정류장에서 풍기 경유 부석사행 버스를 탔다. 엄마가 며칠 전 다녀오시면서 인상깊었다던 교회도 보였고, 즐비한 인삼가게들, 생소하지만 인견 가게도 보였고, 그렇게 지나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타셨다. 비교적 앞쪽에 앉았던 거지이모 옆 빈자리에 앉으실 것 같아 가방을 치워 자리를 내어드렸다. 휘여사 앨범은 나오는 거야 마는 거냐 투덜거리며 음악을 듣고 있는데, 할머니가 거지이모에게 말을 건네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할머니 : 학생, 어디까지 가?
거지이모 : 부석사 가요.
할머니 : 부석사 가는 길이 험해서 그렇지 가면 좋아.
거지이모 : 길이 많이 험해요?
할머니 : 험하지. 나같은 늙은이는 험한데 학생한텐 수월할거야. 근데 혼자 가?
거지이모 : 네.
할머니 : 친구들이랑 가지.
거지이모 : 친구들이 바빠서요.
할머니 : 아니, 그 좋은 델 왜 혼자 가?
거지이모 : 예? 아....(얼굴은 서러움으로 가득차 울그락불그락) 예....-_-;

실은 할머니, 같이 가기로 한 애가 파토내서 안 가려다 가는 건데요, 절대 혼자 가려고 했던 거 아녜요~~~~ 라고 속으로 울부짖고 있는 거지이모.... 엉엉.. 순흠에서 내린 할머니께선 거지이모에게 상처준 건 아시는 지 모르시는 지 해맑게 손 흔들어주셨을 뿐이고....흙흙..

텅 빈 마음을 부여잡고 내린 부석사 앞 주차장은 수학여행온 고등학생들로 넘쳐났지만 거지이모를 반기는 것은 혼자 온 거지이모를 꼬나보는 듯한 고등학생, 그리고 거세게 불어닥치는 바람뿐이고.... 그래도 부석사 앞 은행은 멋질거야 라며 되뇌이며 올라갔는데, 거지이모를 기다리는 것은 다 떨어진 은행잎과 나들이 나온 유치원 꼬꼬마들. 거지이모 빨리 낚였으면 저만한 애가 있을텐데....OTL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할머니의 말씀과는 달리 부석사 가는 길은 험하지 않았다. 거지이모 혼자서 성내듯 올라서 그런 걸지도 몰라.. 끙..
월요일이라 쓸쓸할 거라 예상했으나 계모임, 답사, 수학여행, 소풍 등을 나온 사람들로 조금은 북적였다. 규모가 크지 않아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만,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거지이모에겐 이 정도 크기가 딱 알맞다.

사전에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은 거지이모, 하지만 이거니 저거니 봐도 잘 모르겠다. 아는 만큼 보인다지만 보고 나서 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장금이는 먹지도 않고 맛을 그렸다지만 거지이모는 홍이일뿐이고, 3대 진미니 몇 억이니 하는 송로 버섯에 대해 알면 뭐하나, 정작 먹어보지 않아 맛을 모르는 것을.. 9회말 투아웃 2사만루 끝내기 역전홈런의 묘미는 역시 야구장에서 느껴야 제 맛이고, 키보드로 아무리 낚아봤자 손맛은 모르는 거고, 어쩌구저쩌구..

혼자서만.. 바보같이.. 아웅다웅 주고받는 사이에 거지이모 눈 앞에 펼쳐진 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거지이모에게 무량수전은 안드로메다로 가버렸다. 아.. 그래, 왜 유홍준이 그렇게 말했는 지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구에게든 전화를 걸어 이 기분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한가롭게 내 전화를 받아줄 친구가 없지 싶었다, 다들 바쁘니깐. 그래, 바쁜 거다, 친구가 없어서 그런 게 결코 아니란다!

보존을 위해 출입을 금하는 안양루엔 삿갓의 시가 남아있다. 블로그도, 여행책도 없던 그 시절, 삿갓은 어디서 전해듣고 여기까지 왔을까! 안양루에 앉아 소백산 자락을 바라보며 배추전에 동동주 일 잔도 하셨겠지? 삿갓은 전생에 담덕이셨나? 그럼 거지이모는 호개? 그래서 낸 배추전에 동동주 못 마시는 거임? ㅋ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무량수전은 선이 참 곱고도 고왔다. 그냥 볼 땐 몰랐지. 하지만 부석사를 떠나면서 그걸 알게 되었다. 무량수전과 멀어질수록 아름답더라. 그 시절에 날고 긴다는 목수들은 죄 모여서 만드셨겠지? 어릴 때 외갓집에 갈 때마다 보았던 63빌딩도 그랬는데 그래봤자 무량수전 앞에선 맨날 등터지는 고래 옆 새우일뿐이고..
참, 무량수전을 한바퀴 돌면 이런 걸 보게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단 재민이는 거지이모를 좀 만나서 싱가포르식 태형을 좀 맞는다. 대신 청와대 가서 방명록에 "재민이 왓다갔읍니다"라고 쓰면 용서해주께!

그 멋지다는 부석사의 석양은 아껴두기로 했다. 이 다음에 거지이모에게 낚일 사람을 위해...호호.. 그래, 이거 말곤 없을 거야.. 쫄면을 먹기 위해서는 절대 아닌 거야....하하;;

영주에서 쫄면계를 양분하고 있는 중앙분식과 나드리. 이 두 곳의 느낌은 마치 rw6100과 옴니아 정도? 그냥 느낌이 그렇단 말이다, 절대 맛과는 무관함! 아웅, 내 알육이.. 옴니아는 모르겠다만 삼성의 전화/문자 어플은 정말이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웅, 이 두 집이 ㅈㅇ여중이나 ㄷㄹ여고, ㅂ ㅅ대 앞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 거야, 그래. 애들 꼬득여 맨날 무러 갔을 낀데.. 역시 낸 전생에 호개였어....흙흙.. 각설하고 두 집을 보자면,

나드리분식은 80년대 경양식 분위기, 중앙분식은 새로 지은 티 난다
나드리분식은 성룡 사진, 중앙분식은 쌓여진 단무지가 눈에 띈다
나드리분식은 메뉴가 다양하고, 중앙분식은 쫄면 단품 메뉴다
나드리분식은 김, 중앙분식은 파가 들어간다
나드리분식은 다시다맛 나는 국물, 중앙분식은 길게 썬 단무지 준다
나드리분식은 약간 시면서 맵고, 중앙분식은 약간 달근하면서 맵다

여튼 이날 거지이모, 하루에 쫄면만 두 그륵 무꼬 위에 구멍나는 줄 알았다고.. 배가 너므 불러 길거리에 퍼질 뻔 했다고.. 그러고도 터미널로 돌아가는 길에 시장에서 튀김전 사먹었다고... 이러니 눈과 입은 즐겁지만 손은 시릴 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