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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빈둥빈둥

빛을 찾아서 : 프랑스 롱샹

by 거지이모 2014. 2. 16.

지난 여름엔 별 생각없이 와서 그냥 있다 갔는데, 이번 겨울에도 그렇게 시간을 흘려 버리는 거지고모 자신이 참.. 그래서 어떻게든 어디든 다녀오리라 하는 마음을 먹고 가까운 근교를 중심으로 둘러보고 있었다. 여행사 프로그램에 암스테르담 당일치기가 있었는데, 거지고모 기준 안 가도 되는 필수코스가 2군데나 있어서 시간잡아먹는 귀신이 들러붙었구나 하며 어찌할까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2014년 2월 14일 금요일  Landstuhl-Ronchamp-Bad Krozingen


㈜오랩의 협찬으로 길을 떠났다.
'공부를 다시 해야지' 결심하고 시작했을 때는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는데, 오히려 시작하고 나서 더 깊은 고민과 방황을 하게 됐다. '계속 해도 괜찮은 걸까..?'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고 풀고 싶은데, 답이 있는지 없는지도 몰라서 더 꼬이고 꼬이는 느낌적인 느낌.....ㅎ
그래, 마치 미로 초입에 서 있는 기분. 왜 들어가냐는 만류를 뿌리치고 자신만만하게 들어왔는데 초입에서부터 헤매고 있으니 '이래가지고서야 무사히 나갈 수 있을까', '이러다 미로 속에서 맴돌다 끝나는 건 아닐까', '다시 돌아나갈까', '아니, 그마저도 무사히 돌아갈 확신도 안 서고..'




창 밖만 보며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만 반복하는 사이, 휴게소에 도착했다.




생각이 흩어지고 번뇌가 많으면 입맛도 줄어들던데, 다들.. 근데 거지고모는 왜 그렇지 못한 걸까? ㅋㅋ
국제운전면허증 따위 쓸모없는 종이쪼가리가 된 지 이미 오래라, 대낮부터 맘놓고 드링킹.




독일의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고 달리고 달려서




프랑스 국경을 넘었다. 갈라진 반도에 사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육로로 국경을 통과하는 건 언제나 신기하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흰고릴라 담배피우던 시절(?), 캐나다에서 미국을 살짝 간 봤다가 피 본 경험이 있지만.....ㅠㅠ




우리가 갈 곳은 프랑스 벨포르에서도 더 들어가는 아주 아주 작은 시골 마을 롱샹이다.




주차장에 엑소X5의 개드립를 얌전히 모셔두고 천천히 걸어갔다. 계절 탓인지 날씨 탓인지 시간 탓인지 사람이 거의 없었다.
막 관람을 마치고 나오던 한국 사람 2명, 프랑스 사람 2명씩 2팀이 전부였다. 단체관람객이 오기도 했는데 성당을 다 둘러볼 무렵이라 천만다행이었다.




Notre Dame du Haut, Le Corbusier, 1955




보는 책마다, 에세이마다, 영상물마다, 교수님들마다.. 극찬이 일색인 곳이다.
거지고모가 이 롱샹 성당을 처음 봤을 때 느낌을 떠올려 보면.....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백지상태였다.. 무엇 때문에 그런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롱샹 성당이 가고 싶었다. 하지만 오랩이 '왜 이곳이냐'고 물었을 때 뭐라고 대답을 해야할지 몰라서 그냥 배운 대로 읊어줬다. 아마 영혼없는 대답이란 걸 알아챘을 지도 모르겠다.




다방면에 걸쳐 능력이 뛰어났던 코르뷔지에의 그림이다. 자연물-나무, 별, 산, 길, 손 등- 이 성당을 둘러싼 것들이 아닌가 싶다. 누구나 달란트 쯤은 있다는데, 거지고모는 식탐, 게으름 이런 거나 가득하고....ㅠㅠ




짐작컨대, 이 성당을 위해 수고한 사람들의 이름이 아닐까.
다시는 성당을 짓지 않겠다던 르 코르뷔지에, 현대예술을 성당 속에 끌어들이려던 알랭 쿠튀리에(Marie-Alain Couturier) 신부. 이 두 사람이 조금만 일찍, 혹은 늦게 만났어도 이 성당은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세상에 운명이나 인연 이런 게 진짜 존재하겠구나 싶더라.




언덕 위에 자리잡은 탓에 수도공급이 원활하지 않았던 지라 빗물을 받아 사용할 수 있게 설계했단다.




빗물받이 통을 보면서 저 창은 대체 무슨 공간일까, 왜 저런 형태일까 궁금했다. 이곳에 관한 논문을 몇 개 보고 오기는 했지만 거지고모가 먼저 보고 느낀 다음 다시 읽어서 왜 그렇게/이렇게/저렇게 된 건지, 그리고 미처 몰랐던 이면을 뒤늦게 앎으로써 식견이 얼마나 얕은지 깨닫고 싶었다. 글로 먼저 배우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의문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고, 답을 알게 됐을 때 정말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성당 내부를 찍는 건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알고서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의 감각이라는 게 얼마나 쉬 무뎌지는 것인가.. 어글리 코리안이라고 비난을 받아도 어쩔 수 없다. ㅠㅠ
하지만 십년넘은 거지고모 카메라는 썩었다는 것만 확인했다....OTL




제각기 다른 창이, 제각기 다른 색을 품고 실내 깊숙히 빛을 인도한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며 느끼는 거룩함이나 죄의식 같은 걸 강요하지도 않는다. 거지고모가 부흥회나 수련회를 싫어하는 이유.




르 코르뷔지에에게 주어진 설계조건은 3가지였는데, 그 중 하나가 3개의 작은 채플을 둘 것.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3개의 작은 채플은 마법같이 땋! 나타난다.
빛과 선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면서도 소박하게 나타내는 이 사람은 정말, 이래서 거장이구나..
굳이 거지고모가 거들지 않아도 충분히 찬사를 받지만 그래도 또 한번 박수를 쳤다, 마음속으로..




아무리 예년에 비해 따뜻한 겨울이라지만 그래도 2월 아닌가.. 추워도 너무 추웠다. 르 코르뷔지에가 끝내 허락한 건 의자까지만이었단다, 황송하여라. ^^;;
그 의자 밑으로 발을 내밀면, 무릎을 꿇으면 그 사이로 빛이 스며든다. 사람이 들어와 무릎을 꿇는다는 건, 자신을 내려놓는다는 의미이다. 개중에는 굴욕적인 순간이기도 하겠지만.. 한자와 흠좀무 자신을 내려놓는다는 게, 가진 모든 것을 드러낸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고통을 감내하는 순간, 눈이 부실 정도로 강렬한 빛이 아니라 어둠을 감싸안는 듯한 빛이 비췬다는 것, 신앙은 그런 게 아닐까.




기둥뒤에 공간있음의 창시자 ㅋㅋ 위대한 역작을 앞에 두고 개드립 ㅠㅠ




북쪽에서 바라본 모습.




조개 껍질, 비행기 날개에서 착안했다고는 하지만 또 이렇게 보자니 방주의 느낌도 난다. 만약 성경에 노아의 방주가 없었다면 떠올리지 않았을까?




성당의 북동쪽으로 작은 피라미드가 있다. 이 곳에 오르면 시골마을과 성당의 전경을 볼 수 있다.




두번째 설계조건인, 만 명 정도의 순례자들이 미사를 드릴 수 있는 야외공간.




일년에 두 번 정시순례를 위한 야외공간이다. 지금도 열리는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그 때 꼭 와봐야겠다.. 각종 앰프로 도배된 기계음나쁘다는 게 아니라이 아닌 사람들이 부르는 찬양에 동참하고 싶으네.




누군가 다녀온 감상이 어떻냐고 물어보면
거지고모는 아직도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언제쯤 알 수, 아니 말할 수 있을까..




쿠튀리에 신부의 의도가 무엇이었던 간에,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를 수락한 건 바로 이 작은 시골마을의 풍경 때문이었다고.... 무신론자였던 그에게 신이니 믿음이니 하는 건 아웃오브안중이었을 수도 있다.
다만 건축가로서 이 땅에 욕심이 났나보다. 그리고 그걸 훌륭하게 이뤄냈다.




거지고모 삶에 작은 빛줄기를 찾아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아직 그 빛 가운데 나갈 준비가 안 된 걸지도 모르겠다. 오랩네 덕분에 너무 편하게 와서 그런 거다? ㅎㅎ
걱정, 불안, 염려, 두려움, 부끄러움조차 내려놓기 위한, 발걸음을 한발씩 내딛는 연습을 더 해야겠다.